시대가 지도자를 바꾸는가, 지도자가 시대를 바꾸는가? 이 질문은 마치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를 묻는 것과도 같다. 명쾌하게 답을 내리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내가 자신있게 단언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시대에 어울리는 지도자, 그리고 지도자에 어울리는 시대는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정치는 결국 목소리의 싸움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이기도 하다. 특정한 의견에 많은 목소리와 힘이 실린다면, 그 의견을 대변하는 지도자가 그 생각과 의견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잠시 국민의 권력을 한데 모아 위임받는다.
정치는 또한 수요와 공급의 관계다. 멍청한 의견의 수요가 많다면, 거기에 맞는 인물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성적이고 현명한 의견이 많아진다면 그에 어울리는 걸출한 지도자도 반드시 등장하게 된다.
지금처럼 지도자가 인기투표로 뽑히는 시대에는, 인기와 언변, 이미지가 지도자 선택의 기준이 된다. 그 결과, 멍청한 시대에는 멍청한 지도자가 나타난다. 멍청한 지도자가 이끄는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인재는 다른 곳으로 떠나며, 결국 바보들만 남게 된다. 이건 절대 비난이 아니다, 구조를 분석한 객관적 결론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귀를 열고, 생각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본인과 사회, 조국을 사랑하는 그들의 의견에 점점 더 많은 목소리와 무게가 실릴 때, 진짜 지도자, 시대가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
이 글을 시작하며, 나는 지도자와 시대를 따로 떼어놓고 운을 띄웠다. 그래서 질문이 쉽게 풀리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은, 시대와 지도자는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다. 맞물리지 않은 채, 하나만 혼자 열심히 돌아간다고 해서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쌍방의 행위다. 단지 누군가 말하는 것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 말을 듣고, 함께 흔들리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작은 물결이 큰 파도가 될 수 있는 준비를 마치게 된다.
시대와 지도자는 언젠가는 바뀐다. 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이 어디를 향할지는, 결국 우리가 눈과 귀를 여느냐, 닫느냐에 달려 있다.
시대가 먼저 바뀌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때 그 변화에 맞는 지도자가 등장하면, 시대와 지도자는 함께 변화를 이끌게 된다. 혹은 한 지도자가 먼저 변화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받아줄 눈과 귀가 없다면,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 볼 의지가 없다면, 그 외침은 메아리가 되지 못한 채 바람 속에 사라지고 만다.
변화의 물결이 언제 시작될지, 누가 먼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는 내 세대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묻고, 듣고, 의심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올바른 사고의 DNA를 사회 어딘가에는 심어놔야 한다.
생각은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이고, 다음 세대에게 시대를 넘기는 유일한 유산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야하는 이유이다.
2025년 4월 8일 (화) 문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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